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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대 아테네 :고대 사회 패권 다툼

wikiline 2022. 11. 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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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대 아테네 : 고대 사회 패권 다툼

그리스 남부의 거친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 국가 스파르타는 고대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군사력을 자랑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엄격한 훈련으로 다져진 스파르타 군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다른 도시 국가들과 끊임없이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결코 패배하는 법이 없었다. 강인하고 놀라운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 스파르타 원로들은 갓 태어난 아기들을 시험해서 약하고 기형인 아이를 걸러냈다. 강한 군인이 될 가능성이 낮은 아이들은 협곡에 던져졌다. 시험에 통과한 아이들은 가차 없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받았다. 그리스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플루타르코스는 많은 스파르타 군사 둘에 에 전투 출전은 오히여 구원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스파르타인들에게 전쟁은 힘든 훈련에 비하면 휴가나 다름없었다.

 

군국주의 스파르타와 이웃 도시 아테네의 경쟁관계는 고대 그리스 역사 대부분을 장식한다. 민주주의가 태동한 곳인 아네테는 스파르타에 비하면 훨씬 유연한 사회였다. 문화를 꽃피울 시간이 거의 없었던 스파르타와 달리 아테네는 철학, 예술, 과학 분야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이룬 문화의 중심지였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등의 철학자뿐만 아니라 아이스킬로스, 아리스토파네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극작가도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황금기에 태어났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두 차례에 걸친 침략 시도를 물리치기 위해 일시적으로 손을 잡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의 패권을 두고 경쟁을 벌었다. 두 도시는 기원전 550년부터 기원전 350년까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었는데 매번 그야말로 문명의 충돌이었다. 육지에서는 이름 난 스파르타 군대가 우위를 잡고 있었지만 바다에서는 아테네의 해군력이 강했기 때문에 전체 전력은 큰 차이가 없었다. 두 도시 국가의 경쟁관계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이 그리스를 침략하면서 갑자기 끝나게 되었다. 필리포스 왕과 그 아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 대부분 지역과 아시아로 제국을 확장하면서  두 도시 국가도 집어삼켰다.

 

스파르타대아테네 썸네일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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